이주사목위원회
공지사항

안양엠마우스 공부방 종료 안내

안양엠마우스 공부방 운영을 종료합니다그동안 많은 기도와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종료일 : 2024년 9월 30일◎ 문의 : 이주사목 위원회 (070-4047-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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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23년 제110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담화

제110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담화(2024년 9월 29일)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걸어가십니다-이주민과 함께 걸어가는 것은 교회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우리는 전쟁, 인권 유린, 기후 변화, 빈곤 등 다양한 문제와 위기로 ‘이주’가 전세계적으로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 안에서도 이주 노동자, 유학생, 그리고 난민으로 인정받기를 희망하며 체류하고 있는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을 마주합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위기가 예견되는 한국 사회의 미래에 이주민들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수가 나날이 늘어 가고 있는 이주민들을 향한 사회적 여론에는 환영과 우려의 다소 상반된 시각이 공존합니다.‘이주 현상’에 대한 대중의 혼재된 인식으로 그 어느 때보다 교회의 사명과 역할이 중요해졌습니다. 이주민과 난민의 유입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주로 경제, 정치, 그리고 대중 논리 안에서 형성되는 경향이 있는데, 교회는 그 과정에서 혐오와 차별의 인식이 들어서는 것을 우려합니다. 선주민들의 이익과 권리만이 우선되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논리 안에서는 이주민들과 난민들은 존중받지 못하고 약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이주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혼란과 차별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먼저, 하느님 나라를 향한 ‘이주’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의 인생 여정, 곧 교회의 고유한 순례 본성과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로서 정체성을 기억합니다. ‘교회헌장’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나아가야’ 하며 이것이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본성임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4항 참조). 삼위일체 하느님과 함께하는 이 여정은 현재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순례자로서 체험을 통하여 더욱 심화된 복음을 세상에 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주 체험을 바탕으로 심화된 복음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선포를 통하여 이주민들에게는 희망이 되며, 선주민들에게는 이주민을 향한 이해와 형제애를 가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복음화와 선교는 이주 문제로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교회는 이미 목적지에 이르러 울타리를 쌓고 정착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을 계속하는 순례(이주) 공동체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 안에서 교회는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새로운 길을 찾는 ‘떠남’의 정체성을 지켜야 합니다. 변화하는 시대 상황 안에서 새롭게 직면하는 문제에서부터 언제든지 교회의 여정은 다시 시작됩니다. 그것은 곧 교회가 세상 것에 집착하고 안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며, 관습적이고 폐쇄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개방적이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새로운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성과 포용력은 교회 공동체가 지켜야 할 특성입니다. 교회는 인종과 민족, 문화, 언어 차이를 넘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만남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의 만남은 특별히 더욱 그러합니다. 마태오 복음 25장 35절에 나오는 “나그네”는 곧 ‘이주민과 난민’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존중과 환대 그리고 보호는 곧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입니다. 교회는 국적이 서로 다른 이민자들의 상호 존중과 협력 그리고 화합을 위해서도 기꺼이 봉사할 것입니다. 세상에 만연한 이기적 문화를 이겨 내며 ‘주님과 함께 길을 걷는 이주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을 실현하고자 함께 노력합시다. 전 세계 지역 교회가 시노드 정신으로 함께하는 이때에, 이주민들과 함께 걸어가려는 교회의 노력이 ‘당신 백성 안에서 함께 걸어가시는 하느님’을 드러내는 복음의 징표로 이 세상에 전파되기를 기도합니다. 2024년 9월 29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위원장 정 순 택 대주교

2024.09.10 상세보기

[담화] 2024년 제110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교황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제110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2024년 9월 29일)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걸어가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2023년 10월 29일은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1회기가 끝난 날이었습니다. 이 제1회기를 통하여 우리는 교회의 근본 소명의 일부인 시노달리타스에 대하여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시노달리타스는 주로 하느님 백성이 서로 연결되어 걸어가는 것으로,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봉사하는 은사들과 직무들의 풍요로운 대화로 소개됩니다”(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1회기 「종합 보고서」[Synthesis Report], 도입).시노달리타스의 차원을 강조함으로써, 교회는 역사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 곧 ‘이주’의 길을 걸어 나가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나그네라는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재발견할 수 있습니다(교회 헌장 49항 참조). 약속의 땅으로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묘사하는 탈출기의 성경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종살이에서 자유에 이르기까지의 그 긴 여정은 주님과의 궁극적 만남을 향하여 나아가는 교회의 여정을 예표합니다.또한 모든 시대에 그러하였듯이 우리 시대의 이주민들 안에서도 영원한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하느님 백성의 살아 있는 표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걸어가는 희망의 여정은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필리 3,20).성경의 탈출에서 드러나는 이미지와 이주민의 이미지, 이 둘은 몇 가지 유사점이 있습니다.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이주민들은 자주 억압, 학대, 불안, 차별, 발전 기회의 부족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떠나갑니다. 광야에서 유다인들이 그러하였듯이 이주민들도 길 위에서 많은 장애물에 맞닥뜨립니다. 그들은 목마름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역경과 질병으로 녹초가 되며 절망에 빠집니다.그러나 탈출기를 비롯하여 모든 탈출에 바탕이 되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당신 백성과 당신의 모든 자녀가 가는 길을 앞장서시고 그들과 동행하신다는 점입니다. 당신 백성 가운데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은 구원 역사의 확실성입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가시면서, 너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신명 31,6). 이집트를 떠나온 백성에게 이러한 하느님의 현존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는, 길을 인도하고 비추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탈출 13,21 참조),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며 계약궤를 보호하던 만남의 천막(탈출 33,7 참조), 하느님의 보호를 보장하는 구리 뱀이 달린 기둥(민수 21,8-9 참조), 굶주리고 목마른 백성에게 주신 하느님 선물인 만나와 물(탈출 16─17장 참조) 등이 있습니다. 천막은 특히 주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던 현존의 한 형태입니다. 다윗 통치 시절에 하느님께서는 성전을 마다하시고 천막에 머무시기로 선택하시어, “천막에서 천막으로, 성막에서 성막으로”(1역대 17,5) 당신 백성과 함께 걸으셨습니다.많은 이주민이 하느님을 그들의 길동무, 구원의 인도자이자 구원의 닻으로 경험합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하느님께 스스로를 내어 맡기고 도움이 필요할 때 하느님을 찾습니다. 낙담하는 순간에도 하느님에게서 위로를 얻습니다. 하느님 덕분에 그들이 가는 길마다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있습니다. 이주민들은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그들의 희망을 둡니다. 사막, 강, 바다, 모든 대륙의 국경을 건너는 이주민들의 여정에 얼마나 많은 성경, 복음서, 기도서, 묵주 기도가 함께합니까!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함께 당신 백성 안에서 걸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역사를 통한 여정 중에 있는 사람들, 특히 가장 작은 이들,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신다는 의미에서 당신 백성 안에서 함께 걸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강생의 신비가 널리 퍼져 나가는 모습을 봅니다.이러한 까닭에, 도움이 필요한 모든 형제자매와의 만남과 마찬가지로 이주민과의 만남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이며 헐벗고 병들며 감옥에 갇혀, 만남과 도움을 청하려고 우리의 문을 두드리는 이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기’ 모임 참가자들과 함께한 미사 강론, 사크로파노, 2019.2.15.). 마태오 복음 25장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너희는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만남은 주님을 만나 뵙는 기회가 됩니다. 이는 구원의 기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 안에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난한 이들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주님의 얼굴을 만나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제3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교황 담화, 2019.11.17. 참조).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주민과 난민을 위하여 봉헌된 오늘, 존엄한 삶의 여건을 찾아 고향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이를 위하여 한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도 그들의 여정에 함께하여 ‘시노드 정신’으로 함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느님의 충실한 백성의 여정에서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징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에”(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제1회기 「종합 보고서」 “여정을 계속하기 위하여”) 다가오는 시노드 총회뿐만 아니라 이주민과 난민을 맡겨 드립니다.기도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하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하느님의 순례하는 교회인 저희는고향 땅에서도 나그네처럼 살아갑니다.모든 낯선 땅이 집이고모든 고향 땅이 낯선 곳입니다.지상에서 살아가지만저희는 하늘 나라의 참 시민입니다.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잠시 머물 이 세상 것에저희가 매이지 않게 하소서.이주민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느님께서 저희를 위하여 마련해 두신 영원한 집을 향하여저희가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저희의 눈과 마음을 열어 주시어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성자 우리 주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게 하소서.아멘.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2023년 5월 24일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프란치스코<원문: Message of His Holiness Pope Francis for the 110th World Day of Migrants and Refugees 2024, God Walks with His People, 2024.5.24., 이탈리아어도 참조>영어: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messages/migration/documents/20240524-world-migrants-day-2024.html이탈리아어: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messages/migration/documents/20240524-world-migrants-day-2024.html[내용출처 - https://cbck.or.kr/Documents/Pope/20242343 ]

2024.09.02 상세보기

다문화 이주민 사목 안내서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이주사목국 다문화 이주민 사목 안내서(Pastoral Orientations on Intercultural Migrant Ministry) 서문이 사목 안내서는 제가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 말한 만남의 문화를 발전시키자는 초대를 구체적으로 전하면서 다문화 사목을 제안합니다. 아울러 다면체의 표상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다면체는 “다름이 공존하는 사회, …… 다름으로 서로 온전해지고 풍성해지며 서로를 밝혀 주는 사회를 나타냅니다. 실제로 모든 이에게는 배울 점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쓸모없거나 불필요한 존재가 아닙니다”(「모든 형제들」, 215항).“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보편적 형제애에 헌신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이 부름은 우리의 보편된 존재에 훨씬 더 충실하겠다는 약속으로 해석됩니다. 제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교황 담화에서 썼듯이, “다양한 외국인들, 이주민들, 난민들과의 만남, 그리고 이러한 만남으로 생겨날 수 있는 문화 간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교회로서 성장하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과 전쟁 등의 크나큰 위기의 시기에 편협하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모든 형제들」, 11항 참조)와 철저한 개인주의(「모든 형제들」, 105항 참조)는 세상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우리의 일치를 깨뜨리거나 분열을 일으킵니다. ‘우리’에게 맞서는 ‘그들’로 치부되는 외국인들, 이주민들, 그리고 실존적 변방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이들이 결국 가장 큰 대가를 치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안내서는 온 인류 가족과 교회를 아우르는 더욱더 넓은 ‘우리’를 제안합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일하면서 더욱더 너른 품으로 받아들이는 교회를 이루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 사목 안내서는 우리가 교회 됨을 체험하는 길을 확장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또한 오래 지속되고 있는 뿌리 뽑힘의 비극을 직시하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환대하고 보호하며 통합하고 증진하라고 우리에게 촉구합니다. 아울러 친교를 위하여 협력하는 기회를 창출하라고 촉구합니다. 이 안내서는 그 영성과 생생한 전례 전통의 풍요로움을 깨닫게 하고 우리의 지역과 본당 안에서 새로운 성령 강림을 살아갈 기회를 우리에게 줍니다.또한 이는 참으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함께 걸어가며 각자의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정체되지 않으며 “내국인과 외국인, 원주민과 외지인을 구별하지 않는” 교회가 될 기회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지상의 순례자이기 때문입니다.우리는 함께 꿈꾸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한 인류로서, 같은 인간 육신을 지닌 길동무로서, 우리 모두를 환대해 주는 같은 땅의 자녀로서, 저마다 신앙이나 신념의 부요함을 지닌 개개인으로서, 저마다 목소리를 지닌 개개인으로서, 모든 이가 형제자매로서 함께 꿈꾸기를”(「모든 형제들」, 8항)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제안은, 이 꿈을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서부터 시작하여, 드넓은 천막과도 같이 땅끝까지 확장하고 이주민과 난민 형제자매들을 품어 안으며 보편 형제애의 정신으로 함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난민이나 이주민과의 모든 만남이 당신을 만나는 기회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25,35 참조). 주님의 성령께서는 우리가 모든 이를 품어 안아 다양성 안에서 친교를 쌓을 수 있게 하시며, 결코 비인간적 획일화를 강요하는 일 없이 차이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가톨릭 공동체들은 만남의 기쁨 안에서 성장하고 이주민들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삶을 인식하도록 초대받습니다. 바티칸에서2022년 3월 3일프란치스코 서론“새로운 형태의 빈곤과 취약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거기에서 당장 실질적인 이득을 전혀 얻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알아 뵙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 이민[실향민, 난민]은 제게 특별한 과제를 줍니다. 저는, 스스로 모든 이의 어머니로 여기는 국경 없는 교회의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모든 나라에 관대한 개방을 권고합니다. 이러한 개방은 지역 정체성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종합을 창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10항).자기 나라 안에서든 국경을 넘어서든 강제 이주를 겪는 사람들의 필요와 기본권을 다루는 데에 전 세계가 협력하라는 도전을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잘 깨닫고 있습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창출하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이는 모든 형제들, 곧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라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2021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교황 담화에서 말하였듯이, 교회인 우리는 두 가지 주요 도전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과제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내적(ad intra)이고 외적(ad extra)인 선교 사명을 이룹니다.내적 선교 사명의 과제는 우리 신앙의 보편성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곧 모든 이를 받아들일 수 있고 가톨릭 교회의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이 저마다 어디에 있든지 교회의 온전한 지체임을 인식할 수 있는 교회를 뜻합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세계 각지에서 도착하는 가톨릭 신자 개개인을 받아들이고, 지역 공동체 안에 그들을 시민이자 동등한 구성원으로 통합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우리가 바오로 성인에게서 분명히 들은 말씀 그대로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에페 2,19). 모든 가톨릭 신자는 교회 안에서 능동적 시민으로 여겨지는 온전한 일원이 될 권리를 가집니다. 이는 곧 책임감을 가지고 교회의 삶에 참여하며, 전례를 활성화하고 자기 고유한 종교심과 특별한 문화적 표현으로 공동체들에 다가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첫 단계는 모든 이가 분열이나 계층의 구분 없이 들어갈 수 있도록 천막을 넓혀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모든 이가, 세 위격을 지닌 한 분 하느님의 삼위일체의 풍요로움을 모범으로 삼아 공동체를 윤택하게 해 주는 그들의 차이를 지킬 수 있습니다. 외적 선교 사명의 과제는 참으로 선교하는 교회가 되는 방식입니다. 곧, 도움이 필요한 이들, 버려진 이들, 배척받는 이들, 억압받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이를 인식하고 돌보아야 하는 것은 이것이 주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자선과 사랑을 통하여, 특히 자신이 선택했기 때문이든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든 교회 밖에 있는 이들에게 마음의 회심을 북돋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포용하는 교회가 되라는 부르심입니다.구체적인 개별 공동체 안에서 교회의 삶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일은 그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반영해야 합니다. 공동체에 새로 유입된 이들은 우리에게 본당에 관하여 다시 생각해보라는 도전 과제가 됩니다. 이는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새로 유입된 이들은 외부로부터 부가된 이로 여기는 마을을 표양으로 삼는 본당이 아니라 움직이는 교회, 언제나 다른 이들을 열린 자세로 환영하는 교회를 지향하는 본당으로 다시 생각하라는 도전입니다. 이는 동화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풍요로움에 대한 문제이며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변화하게 하는 길입니다. 어떤 나라에 도착하는 이들이 자신을 이등 시민처럼 느끼지 않고 공동체의 일부로서 교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서 하나의 ‘우리’임을 느껴야 합니다.「다문화 이주민 사목에 관한 사목 안내서」의 목적은 ‘환대하기, 보호하기, 증진하기, 통합하기’라는 네 동사로 명시할 수 있는 행동을 위하여 구체적인 제안과 길잡이를 제공하려는 것입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실존적 변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를 위한 가톨릭 교회의 헌신을 이 네 동사로 집약하셨습니다. “이는 상명하달식의 복지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저마다의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을 보존하는 한편 다름에 열려 있고 인간의 형제애 정신으로 그 다름을 증진하는 법을 아는 도시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 네 동사를 통하여 함께하는 여정에 뛰어드는 문제이기”1) 때문입니다.                 1. 두려움을 인정하고 극복하기“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창세 46,3).두려움은 새로운 상황과 환경으로 향하는 인간과 공동체의 여정에 매우 자연스러운 동반자입니다. 미지를 상징하는 이집트가,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여러 확언에도 야곱을 두렵게 한 것은 당연합니다. 다른 이와의 만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반대를 일으킬 수 있는 그 두려움이 부디 정도를 지나치지 않고 적절하게 고려되고, 언제나 염려하시는 하느님의 개입에 힘입어 극복되기를 바랍니다. 도전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이동하는 많은 힘없는 형제자매들을 실질적으로 환영하는 데에 방해가 됩니다. 낯선 이를 정치적 경제적 안정의 위협이라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들은 대체로, 편협하고 외국인에 대한 혐오적 태도를 가중하면서 지역 공동체들이 이주민과 난민을 비롯하여 다른 이들을 두려워하게 합니다.응답가톨릭 교회는 지역 공동체들이 이주 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고 상호 만남을 위한 적합한 환경을 보장하라고 부름받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1. 사람들의 두려움을 다루기 그리고 이주민과 난민, 그들의 사연, 이주의 근본 원인, 이주의 영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여 사람들이 불안을 극복하도록 돕기.“사회사업가들과 사목 종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지역 주민들에게 복잡한 이민 문제와 외국인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과 적대적 편견에 맞설 필요성을 인식시켜야 합니다.”2)2. 환대와 친절의 모범 사례와 정착 공동체의 온전한 인간 발전에 성공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이주민과 난민의 이야기를 홍보하는 데에 대중매체를 활용하기.“이와 관련하여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들이 책임 있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사실 고정 관념을 없애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여, 일부의 잘못을 고발하고 대다수의 정직과 공정과 선함을 알리는 것이 바로 그들의 몫입니다. …… 커뮤니케이션 매체들 또한 이러한 ‘태도의 변화’를 받아들여 이민과 난민을 대하는 자세의 변화를 촉진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3)3. 이주민과 난민에 관한 공적 담론에서 긍정적인 언어를 적용하고 그들에 대한 잘못된 진술에 맞서 철저한 연구에 기반한 주장들을 전파하기.“정보 매체들은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 특별히 난민, 망명 신청자, 그 밖의 다른 형태의 이민과 관련하여 올바른 용어를 사용할 책임이 있습니다.” 4)4. 더욱더 넓은 우리를 이루고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 형제애의 온전한 표현을 강화하는 데에 형제자매로서, 동등한 인간 존엄을 지닌 이로서 그리고 공동 주체로서 인정되도록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강화하기. “저는 여러분의 사명 곧 모든 가난한 형제자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고, 모든 이주민, 실향민, 난민의 존엄을 선포하고 수호하는 것에 대한 더욱더 깊은 인식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들에 대한 지원은 우리 마음의 선함에서 나온 자선이 아니라 그들에게 합당한 정의의 행동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5)5. 이주에 관한 이야기의 진정한 변화를 향하여, 이주민과 난민들에 대하여 마음이 더욱더 열려 있고 연민 어린 인식을 더욱더 지니는 경향이 있는 청소년과 청년들과 함께하기.“젊은이들이 문화와 만남 속에서 성장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다름 안에서 성장하도록 도우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비교로, 올바른 비교로 성장하는 방식입니다.” 6)2. 만남 증진하기“앞서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루카 18,39).예리코의 눈먼 이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그를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자신을 단념시키도록 두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더욱 큰 소리로 외칩니다. 우리는 만남이 흔히 기피되는 상황 안에 살아갑니다. 현상(status quo)을 유지하고 싶어 하거나 설상가상으로 갈등을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만남은 방해를 받습니다. 또는 우리는 소외된 이들을 공동체를 건설하는 만남에서 배제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 안에서 살아갑니다. 만남을 증진하는 것은 모든 목소리, 특히 가장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냄으로써 “큰 소리로” 만남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도전가톨릭 공동체들은 대체로 많은 이주민과 난민의 도착에 준비되어 있지 않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한편 많은 이주민과 난민은 안전지대와 게토(ghetto) 형성에 의존하면서 지역 사회와 통합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응답가톨릭 교회는 참된 ‘만남의 문화’를 증진하면서 지역 공동체와 새로 유입된 이들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라고 부름받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1. 불평등에 맞서는 데에 선제적으로 참여하기와 버리는 문화에서 공동체 생활의 구성적 요소인 돌봄과 만남의 문화로의 문화적 전환을 촉진하기.“자기 신앙에 대한 강한 확신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존엄과 저마다의 모든 필요를 최우선으로 삼음으로써 불의로 야기된 장애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리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7)2. 연계된 모든 사람을 위한 풍요로운 만남과 문화적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서로 연결된 세계적 현상으로서의 이주에 대한 이해를 뒷받침하기.“이민 집단들과 지역민들을 단순히 평행선상에 놓게 되면 문화 간에 벽이 생기거나 그들 사이에 단순히 피상적인 관계나 묵인의 관계가 수립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달리 문화들이 서로를 풍요롭게 하도록 장려하여야 합니다. 곧, 참된 이해와 사랑의 정신으로 서로의 문화를 알고 서로의 문화에 개방적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8)3. 학교, 교리서 수업, 젊은이 모임, 신앙 교육 등 가톨릭 교육의 모든 분야에서 도움을 받는, 생명을 주는 만남들을 위하여 사람들을 준비시키기.“남녀 축성 생활자들, 공동체, 평신도 단체들, 교회 운동들, 사목 종사자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방인에 대한 환대와 연대와 개방성을 가르칠 의무를 느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민이 교회에 더욱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신자들이 여러 문화와 종교에 있는 말씀의 씨앗(semina Verbi)을 발견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9)4. 스포츠 행사, 축제, 그 밖의 사회 행사들과 같이 지역 주민들과 그 지역에 새로 유입된 이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고 문화 다양성을 기념할 기회를 가지는 만남의 장을 마련하도록 본당들을 독려하기. 그들의 특별한 감수성과 필요를 감안하면서, 그 지역 젊은이들과 새로 유입된 젊은이들을 위한 특별 사목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그러므로 개별 교회들은 복음을 위하여, 이민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며 신자들이 편견과 선입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목 활동들을 통하여 이민들을 더욱 따뜻이 맞아들이도록 요구받습니다.” 10)5. ‘다리 건설자’ 곧 지역민과 새로 유입된 이들 사이에 풍요로운 대화와 나눔의 촉진자로서 사목 일꾼들을 훈련하기. 이는 본당 구역 안에서 새로 유입된 이들과의 만남을 이루고 그들이 지역 공동체의 능동적 구성원이 되도록 초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교회 공동체, 본당 공동체, 교구 공동체 사이에 그리고 여러분의 주교회의들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고자 쏟은 모든 노력은 교회 측에서의 예언자적 행동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교회 헌장 1항)가 될 것입니다.” 11)3. 경청하기와 연민 갖기“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 12,15).참된 경청은 언제나 동정과 공감의 활동입니다. 이는 경청하는 이는 자신의 체험을 나누는 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하고, 인간적 체험은 사람의 마음에 반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다른 이를 향하고 다른 이와 함께 하는 감정과 돌봄의 자세이며, 이 자세는 사람들을 연결하여 주고 또 공감하는 인간 공동체를 만듭니다. 도전의심이나 준비 부족 때문에, 이주민과 난민과의 만남을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하는 데에 필요한 공감과 연민이 가로막혀 지역 가톨릭 공동체들은 이주민과 난민의 체험과 필요, 두려움과 열망을 경청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응답가톨릭 교회는, 궁핍한 이주민과 난민을 만나는 모든 상황을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 만나고 (마태 25,32 참조)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유일한 기회로 여기면서, 이주민과 난민에게 열심히 귀 기울이고 연민을 키워가라고 부름받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1. 지역 가톨릭 공동체들 안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함께 깊이 상처 입은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돌봄의 문화 증진하기.“‘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 참조: 마태 18,5; 루카 9,48; 요한 13,20). 이 말씀으로 복음사가들은, 그리스도 공동체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커다란 도전이 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상기시켜 줍니다. 12)2. 궁핍한 이주민과 난민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고 공감과 연민을 키우도록 본당 신자들, 특히 청소년과 청년들을 초대하기.“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그리고 특히 젊은이들은 폭력을 피해 나와 새로운 생활 방식에 부딪치고 통합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많은 형제자매를 도와주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선포는 위안과 희망과 ‘충만한 기쁨’(요한 15,11 참조)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13) 3. 이주 사목을 위한 사목 일꾼들의 훈련의 하나로 상담과 경청 기술을 포함하기.“따라서 처음부터 신학교에서 ‘영성적 신학적 법률적 사목적 양성이 …… 유동 인구 사목을 통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14) 4. 가톨릭 보건 전문가와 사회 전문가들이 궁핍한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구체적인 봉사를 개발하고 그들 사명의 하나로 사목 일꾼들에게 훈련을 제공하도록 북돋기.사회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 경제학자, 법학자, 교회법학자, 윤리학자, 그리고 신학자들이 함께 모여서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사목 실무자들과 더불어 비교하면서, 현상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거기에 대처할 수단을 제시하는 데에 공헌하게 되는 것입니다. 15)4. 우리의 보편성(catholicity) 실천하기“유다 사람에게는 다른 민족 사람과 어울리거나 찾아가는 일이 불법임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사람을 속되다거나 더럽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사도 10,28).성령에 힘입고 로마인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의 요청을 받은 베드로는, 다른 민족과 종교에 속한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새로운 다른 길을 보여 주셨다는 것도 공개적으로 시인합니다. 그 길은 그리스도께서 내어 주시고 교회 안에서 보편적인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구원에 참여하라고 다른 민족들을 초대하는 길입니다. 이는 성령의 도움으로, 교회가 걸어가라고 부름을 받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 길입니다. 도전일부 지역 가톨릭 공동체 안의 이미 규격화된 획일성과 민족주의적 화법을 지향하는 경향은, 본질상 보편적이고 서로 다른 언어와 전통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는 교회의 참된 의미와 충돌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분열을 초래하고 교회의 보편적 친교의 참된 표현을 촉진하려는 노력을 위태롭게 합니다. 응답가톨릭 교회는 그 지체들의 다양성을 인정되어야 하는 풍요로움으로, 더욱더 가시적으로 ‘보편적’이 되는 기회로, 또한 다른 문화 전통들을 존중하는 활기찬 전례로써 거행되어야 하는 선물로 이해하라고 부름받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과 성찰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1. 삼위일체 하느님의 형상 안에서, 다양성 속의 친교로서 교회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와 모든 이의 어머니로서, 세례 받은 모든 이를 위한 하나의 집이자 가정으로서 교회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기. “이 보편성의 힘으로, 각 부분이 그 고유한 은혜를 다른 부분들과 온 교회에 가져다주어, 전체와 각 부분은 모든 것을 서로 나누며 일치 안에서 충만을 함께 도모하는 가운데에 자라나게 됩니다.”16)2. 지역 가톨릭 공동체 내의 문화적 종교적 표현의 진정한 다양성을 서로 다른 전통에서 배우고 창의적 의사소통을 통한 문화 간 이해를 촉진하는 기회로 받아들이기. “일치의 성사인 교회는 이념이나 인종적 장벽과 분열을 극복하고, 대화와 상호 수용을 통하여 차이점을 올바로 직시하면서 진리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모든 민족과 모든 문화에 선포합니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적 본체들은 각자의 고유한 긍정적 요소들을 버리지 말고 그것을 온 인류를 위한 일에 사용함으로써 보편적인 논리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논리는 모든 개별 교회와 관계되며, 세 위격의 친교를 각 위격의 충만한 생명에 의지하는 삼위일체 안에서 관상되는 다양성 안의 일치를 강조하고 드러냅니다.” 17)3. 가톨릭 영성과 전통의 풍요로움을 인정하도록 전례 거행을 위한 적절한 공간을 보장하기와 다양한 거행에 참여하도록 신자들을 초대하기. “교회의 일치는 같은 기원과 언어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와 민족의 사람들을 한 백성으로 함께 묶어 그들에게 같은 주님에 대한 신앙을 주고 같은 희망으로 부르는 오순절의 성령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18)4. 다양한 민족 배경을 가진 모든 신자에게 알맞은 사목–직무자, 구조, 프로그램 –을 제공하는 것은 다양성 안에서 친교를 쌓으려는 장기적 통합 과정의 첫걸음으로 언제나 이해되어야 한다. “주교회의들은, 오늘날 이주민들과 여행자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목적을 위임받는 사제를 임명하거나 이러한 목적으로 설립된 특별 위원회를 마련하라고 요청받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러한 사람들의 영적 사목의 연구과 방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19)5.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의 실행을 촉진하도록 직무자와 사목 일꾼들의 능력과 역량을 키우는 구체적인 교육하기. “이러한 종류의 사목 활동에서는 그 성격상으로나 능률상으로나 특수한 전문적 예비 교육이 불가피한 필수 조건인 것입니다. …… 신학교와 그 밖의 사제 양성 기관들에서 미래의 사제들을 위하여 영성적, 신학적, 법률적, 사목적인 교육을 실시하면서, 유동인 사목을 통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갈수록 뚜렷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20)6. 본질상 보편적인(catholic) 교회, 그리고 그 실천된 표현 안에서 더욱더 전 세계적인(universal) 교회에 봉사하도록 신학생들을 교육하기, 신학생들이 신자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능력을 높이도록 신학 과정 안에 구체적인 교과 과정을 포함시키기, 이주민들의 출신 국가들에서 신학생들의 사목 현장 체험을 촉진하기.“이주하는 이들을 [예를 들어, 그들의 사고방식, 생각, 문화, 영성적 삶에 대하여] 잘 알고 그들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이주민 돌봄을 실천하면 참으로 큰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주민들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제들을 통한 이주민 돌봄의 이미 명백한 이점이 확인되었고, 그 유용성이 보이는 한 이를 유지해야 합니다.” 21)5. 이주민을 축복으로 이해하기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3,2). 하느님 은총은 흔히 놀랍고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체험됩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마므레에서 세 사람을 만난 것(창세 18장 참조)을 언급하며, 순례자들과 이방인들이 하느님 은총을 전하여 주는 예상하지 못한 통로이자 전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시고 다시 활기를 북돋아 주고자 하시는 이 소중한 통로와 연결되려면, 이동하는 사람들과 이주민들에 대한 환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도전엄청난 수의 이주민이 유입되는 나라들에는 많은 가톨릭 공동체가 높은 비율의 이주민으로 구성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본당 신자가 거의 모두 외국인입니다. 게다가 일부 교구에서는 성사와 사목의 지속성을 이미 외국에서 온 사제들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축복으로 여겨지기 어렵고, 세속주의 때문에 영적 사막이 예사롭지 않게 넓어지고 있는 곳에서 특히 교회 생활을 다시 꽃피우는 좋은 기회로 좀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응답가톨릭 교회는 가톨릭 이주민들이 지역 교회에 새 삶을 가져다주는 길로 제공하는 기회들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라고 부름받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1. 이주민들은 새로운 활력을 주는 주체가 될 수 있으므로, 가톨릭 공동체 안에서 이주민의 존재를 인정하기와 그들의 존재를 축복이며 교회 생활을 활기차게 할 수 있는 하느님 은총에 개방되는 기회로 이해하도록 촉진하기. “이민의 특수성은 우리에게, 성령을 통하여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되는 오순절의 형제애를 다시 한번 실천하도록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이민의 경험은 죽음과 부활로 더 이상 종도 이방인도 없는(갈라 3,28 참조) 새로운 인류가 창조되는 파스카 신비에 대한 선포일 수 있습니다.” 22)2. 이주민들이 자국 공동체에서 습득한 기술과 전문지식을 제공하여 자신들의 풍요로움이 지역 공동체 삶에 소중한 기여라는 사실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기. “…… 무수한 이민들이 처음부터 이 사명에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에서 활동한 사도들의 사업을 지원해 준 최초의 선교사들은 이민들이었습니다. 이주 현상은 항상 교회의 역사 전반에 걸쳐 그리고 온 나라들의 복음화에 있어서 신앙을 전수시키는 효율적 방도로서 기여해 왔습니다. 간혹 번창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사제의 영도력 하에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자신들의 고달픈 삶의 시련과 희생들을 직면할 수 있게 해 주는 용기를 하느님에게 간청하기 위하여 초라한 건물 안에 함께 모인 이민들의 조그마한 거류민 집단으로서 출발하였습니다.” 23)3. 가톨릭 이주민들이 도착한 나라에서 참된 선교사, 자기 신앙의 증인, 복음의 전달자가 되도록 준비시키기. 그러한 사명은 효과적인 교회 간 협력을 통하여 인정받고 증진되며 지원받아야 한다. “난민과 강제 이주민이 복음화를 위한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이들입니다. …… 그들의 의식을 함양하고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증언의 가치를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복음을] 분명히 선포하되, 모든 경우에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여 타인을 온전히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24)4. 가톨릭 이주민들이 본당 사목 평의회와 재무 평의회와 다른 사목 책임에 참여하면서 지역 본당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촉진하기.“이주민들은 자신들이 교회의 돌봄을 받는 이들일 뿐만 아니라 교회 사명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그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특히 정착의 초기 단계에서 그리스도께 헌신하며 사는 가운데에 직면하는 어려움을 경감시켜 주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이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도록 격려합니다.” 25)5. 이주민 증가에 더욱더 효과적으로 응답할 새로운 사목 구조를 계획하기. 예를 들어, 다양성으로 풍요로워진 하나의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하는 사목 프로그램을 지닌 다문화 본당 계획하기. “여기에서 통합 사목은 무엇보다도 다른 문화와 민족들을 존중할 줄 아는 친교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 이런 바탕 위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민들과 외국인들에게 사목적 도움을 주는 문화 간 민족 간 또는 예법 간 본당 사목구. 이렇게 하여 전통적인 속지적 본당 사목구는 민족 간 문화 간 체험을 위한 특별하고 안정적인 장소가 되는 한편, 개별 집단들은 일종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26)6. 이민 2세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중요한 존재와 지역 공동체 안에서 그들이 촉진시킬 수 있는 문화 간 동력을 고려하는 혁신적인 교리교육과 사목 프로그램 개발하기“우리는 두 문화를 아우르는 이들인 이주민과 이주민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요청합니다. 이는 특히 그들이 공동체 안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봉사할 기회를 주고 그들 가운데 성소를 북돋고자 하는 것입니다.” 27)7. 지역 신자들과 새로 유입된 이들 간의 통합에 활력을 불어넣는 노련한 중재자가 되게 힘을 길러주도록 지역 공동체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외국인 사제들을 위한 특별 교육을 제공하기.“교구 간의 신중하고 관대한 협력은 이 중대한 직무에 적합한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보내는 데에 중요합니다. 그들을 파견받는 교구의 교육과 환대에 관한 지침은 그들을 파견하는 교구와 공동으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파견받는 교구에서 머무는 동안 여러 나라의 사제와 수도자는 광범위하고 신중한 예비 교육과 아낌없는 환대를 받아야 합니다.” 28)8.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을 실행할 수 있도록 직무자들과 신학생들을 교육하기.“이러한 준비는 환대의 예언적 계시, 그리스도교 형제애의 복음적 수칙, 인권의 신학적 바탕, 인간 존엄에 대한 완전한 확신을 그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분명한 동기를 지닌 교육은, 이주민들의 종교, 문화, 또는 사회적 배경이 무엇이든지 그들을 위한 교회의 지침이 지체 없이 참된 사제의 정신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입니다.” 29)6. 복음화 사명 수행하기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사도 11,17)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모든 이에게 예외 없이 예수님 안에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인 생명을 주는 선물을 주십니다. 교회는 왜곡된 종교적, 자기 민족 중심적 원칙을 명목으로 이 보편적 선물을 제한하여 하느님의 사명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이 사명은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께서는 이 사명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교회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에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서 이 사명을 수행합니다.도전많은 가톨릭 공동체는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신앙이 없는 이주민과 난민의 도착을 자신들이 세워놓은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여깁니다. 이는 그들과의 그 어떤 의미 있는 교류도 방해하는 불신과 의심의 태도로 종종 이어집니다. 응답가톨릭 교회는,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신앙이 없는 많은 이주민과 난민의 존재를 증언과 자선을 통한 교회의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는 섭리적 기회로 여기도록 부름받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1. 시대의 표징이자 교회가 어떻게 모든 이를 포용할지 생각하는 기회인 이주에 대한 선교학적 성찰을 촉진하기 그리고 그러한 성찰의 결과를 신자들에게 전파하기.“이주민과 난민 사목에 대한 ‘동기’를 주기 위하여 저는 여러분을 시대의 표징인 이주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심화하도록 초대합니다.” 30)2. 만남은 가톨릭 신앙을 깊게 하고 견고하게 할 수 있는 기쁜 증언의 구체적인 기회를 나타내기에,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신앙이 없는 이주민과 난민과의 만남에 지역 신자들을 준비시키기.“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하나의 커다란 성취인 관용의 정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존중을 증언하고 실천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능하고 적절하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정중히 알리기’ 위하여, 다른 출신,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나눔을 지향하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31)3.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는 적절한 방법으로 지역 공동체 안에 모든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환대하는 태도와 자선 활동을 증진하기. “이러한 까닭에, 일반적으로 힘없는 이들인 이민과 난민의 존재는 우리에게 하나의 초대가 됩니다. 오늘날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에 안주해 버릴 위험에 놓여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과 인류의 일부 본질적 차원들을 회복시키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사랑의 실천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 줍니다(야고 2,18 참조). 가장 고결한 사랑은 보답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조차 없는 이들에게 실천하는 사랑입니다.” 32)4. 일반화와 편견을 뛰어넘어 다른 종교에 대한 타당하고 균형 잡힌 지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종교 간 대화에 참여하도록 지역 공동체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점점 더 다민족,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는 세상에서 인류 형제자매들이 이루는 이 한 가족 …… 안에서 정당한 차이를 존중하며 평화롭고 유익하게 공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종교인들도 대화에 참여할 것을 촉구받고 있습니다.” 33)5. 교구와 본당 차원의 사목 프로그램에 이주민과 난민 선교를 포함하기. “이주는 새로운 복음화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파스카의 신비 안에 예고된 새로운 인류의 성장을 위한 전망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인류에게는 모든 타향이 고향이고 모든 고향이 타향입니다.” 34)6.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을 실행할 수 있도록 직무자들과 신학생들을 교육하기.“이민의 사도직은 이러한 파견된 ‘선교사들’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온 지역 교회, 사제, 수도자, 평신도의 일입니다. 35) 그리고 이는 너무 중요하기에 신학적, 사목적, 조직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36)7. 친교를 향한 협력“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요한 10,16).선교하는 제자이자 교회의 세례 받은 지체인 우리의 소명은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서 다양성 안에서의 친교와 일치를 키우고 강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양 떼’라고 통상 여겨지는 이들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돌보시는 목자이십니다. 그렇다면 친교를 향한 길은 보편적 형제애를 향한 여정이 됩니다. 도전 다양한 가톨릭 단체들이 펼치는 이주민과 난민을 지원하는 활동은 종종 단편적이고 조직적이지 못합니다. 이는 사도직의 효과를 위태롭게 하고 내부 분열을 일으키며 자원 손실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유사한 결점들은 이주민과 난민을 돕는 데에 종사하는 다른 단체들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칩니다.응답가톨릭 교회는 모든 가톨릭 단체 사이에서 그리고 가톨릭 단체들과 다른 모든 단체들 사이에서 효과적인 협력을 증진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1. 지역 교회와의 친교 안에서 효과적인 활동을 위한 전망과 계획을 공유하도록 모든 이가 부름받은 자리인 정기 회의를 통해서 이주민 사목에 관여하는 모든 가톨릭 단체의 노력들을 확실히 조율하기. “그러므로 지역 교회가, 헌신 지속성의 정도에 따라 발생하는 미래의 도전 과제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목적에서 가톨릭 자선 단체들은 서방/동방 교회 교구장의 지도 아래 지역 교구 조직과 언제나 긴밀히 협력하며 일하여야 한다. 국제기구들에 관하여 교황청 관할 부서가 조언과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37) 2. 공동 사목 책임을 바탕으로 하여, 이주민과 난민들이 출발하고 경유하며 도착한 나라들의 지역 교회들 사이의 협력을 강화하기. 궁극적으로 이는 이주민과 난민을 돌보는 하나의 교회이다. “출신지와 경유지와 도착지의 교회들도 떠나는 이들과 도착하는 이들을 위하여, 특히 여정 중에 자신들을 환대하는 이웃 속에서 그리스도의 자애로운 모습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협력을 증대하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합니다.” 38)3. 같은 지역 내에서 사목하는 그리스도교 지도자들 사이에 공동 사목 계획을 증진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기도와 활동 모두에서 교회 일치 협력을 강화하기. “이러한 자선 활동에서 다양한 그리스도교 교회들과 다양한 비그리스도교 종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력은 인류 가족의 더욱 깊은 일치를 찾고 실행하는 데에 새로운 발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39)4. 이주에 대한 성찰을 함께 하고자 지역 차원에서나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종교 간 모임을 더욱 증진하기, 이주민과 난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보편적 형제애의 메시지를 널리 알리기. “이러한 대화는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되며, 사람들이 타 종교를 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대화는 단순히 말을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믿음을 지닌 개인과 공동체들과 나누는 모든 유익하고 건설적인 종교 간 관계를 포함하는 것으로, 상호 이해를 그 목적으로 합니다.” 40)5. 더 넓은 우리를 함께 추구하고자, 다른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기관들과 시민 사회 기관들, 정부들, 국제기구들 사이의 공동 행동과 협력을 증진하기.“교회의 사목 전통에 따라 교회는 앞서 제안한 모든 계획을 실현하는 데 헌신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결과를 위해서는, 정치 공동체와 시민 사회가 반드시 각자 지닌 책임에 따라 기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41)결론모든 두려움, 특히 잘못 이해된 개념들을 바탕으로 생긴 두려움에서 벗어나 성장하면서, 가톨릭 공동체들은 참된 ‘만남의 문화’를 증진하며 새로 유입된 이들과 함께 다리를 건설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우리는 이 문서를 읽는 독자들이 이주민과 난민의 존재가 우리 공동체에 가져다주는 풍요에 대한 인식을 체험을 통하여 심화시키도록 이끌면서, 그들이 참된 다리 건설자가 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가톨릭 공동체는, 어려움에 놓인 이주민과 난민을 만나는 모든 상황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회로 여기면서(마태 25,35 참조), 이주민들이 그들 공동체에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는 기회들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며, 다른 문화 전통을 예우하며 생생한 전례를 거행함으로써 다른 이들에 대한 존중을 키우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가톨릭 공동체들은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신앙이 없는 많은 이주민과 난민의 존재를 증언과 자선을 통한 교회의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는 섭리적 기회로 여기도록 초대를 받습니다. 이렇게 하여 가톨릭 공동체들은, 이사야 예언자가 하느님 백성에게 보여 준 표상과 초대에 기여하면서, 모든 단체 사이의 효과적 협력을 자연스럽게 촉진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 ……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이사 56,6-7). 하느님 은총으로 가톨릭 공동체들 사이에서 이주민들과 난민들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음에 감사드리며, 교회는 교회 지체들의 다양성을 감사하여야 할 풍요로, 그리고 이주한 이들의 기여를 우리 신앙의 보편성을 더욱 생기 넘치고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기회로 계속해서 강조할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모든 지체에게 이 호소는 우리의 ‘보편된’ 존재에 훨씬 더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합니다. …… 성령께서는 우리가 모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양성 안에서 치교를 이루며, 몰개성적인 획일화를 강요하지 않고 다름이 화합을 이루게 해 주십니다. 다양한 외국인들, 이주민들, 난민들과의 만남, 그리고 이러한 만남으로 생겨날 수 있는 문화 간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교회로서 성장하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세례 받은 모든 이는, 어디에 있더라도 마땅히 지역 교회 공동체 그리고 하나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이고, 한 지붕 아래 사는 식구이며, 한 가정의 일원입니다.” 42)참으로 이 안내서의 목적은, 우리가 아래에서부터 시작하고 우리의 형제자매인 이주민과 난민을 환대하고 보호하며 증진하고 통합하도록 우리 나라들에서 가장 멀리까지 뻗어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며, 형제애와 보편성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또한 즈카르야와 함께 이렇게 노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루카 1,73-75).1) 프란치스코,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2019.4.3.2)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훈령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Erga Migrantes Caritas Christi), 2004.5.3., 41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32호(20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제1판), 109면.3) 프란치스코, 제100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3.8.5.,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0호(201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1면.4)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와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난민과 강제 이주민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환대하십시오」(Welcoming Christ in Refugees and Forcibly Displaced Persons), 2013.6., 42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0호(201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29면.5) 요한 바오로 2세, 국제가톨릭이주위원회 회합 참가자들에게 한 연설, 2001.11.12.6) 프란치스코, 밀라노 산 카를로 대학의 학생, 교사, 부모와의 대화, 2019.4.6.7)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와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난민: 연대에의 도전」(Refugees: a Challenge to Solidarity), 25항, 바티칸 시국, 1992.8) 요한 바오로 2세, 제91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04.11.24.,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32호(2005), 31면.9)「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96항.10)「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100항.11) 프란치스코, 제34차 세계청년대회를 맞이하여 파나마 사목 방문, 중앙아메리카 주교단과의 만남, 2019.1.24.12) 이 말씀은 …… 하느님께 이르는 확실한 길을 보여 줍니다.” 프란치스코, 제103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6.9.8.,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5호(2017), 129면. 13) 베네딕토 16세, 제98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1.9.21.,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46호(2012), 115면. 14)「난민과 강제 이주민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환대하십시오」, 101항.15) 교황청 이주사목위원회, 주교회의에 보내는 회람 「교회와 유동 인구」(The Church and Human Mobility, A Circular Letter to the Episcopal Conferences), 1978.5.26., 40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7호(1998), 171면.1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3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글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7(제3판).17)「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34항. 18)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103항.19) 교황청 주교성성, 「이민 사목에 관한 훈령」(Instructio De Pastorali Migratorum Cura), 1969.8.22., 『사도좌 관보』(Acta Apostolicae Sedis: AAS) 61(1969), 614면.20)「교회와 유동 인구」, 33항. 21)「이민 사목에 관한 훈령」.22)「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18항. 23) 요한 바오로 2세, 1989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 1989.9.10., 『회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57호(1990.3), 8면, 수정 번역.24)「난민과 강제 이주민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환대하십시오」, 88항. 25) 호주 주교회의, ‘이주민과 난민 사목에 관한 성명서’(Statement on the Pastoral Care of Migrants and Refugees), 2000. 26)「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93항.27) 미국 주교회의,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희망의 여정을 함께하는 이들입니다’(Strangers No Longer; Together on the Journey of Hope), 2003. 28)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희망의 여정을 함께하는 이들입니다’.29)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미래의 사제 양성에서 유동 인구 사목」(Pastoral Care of People on the Move in the Formation of Future Priests), 바티칸 시국, 1986.30) 프란치스코, 가톨릭 대학교 국제 연합회 회원들에게 한 연설, 2017.11.4.31)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9항. 32) 프란치스코, 2019년 제105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9.5.27.,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0호(2019), 85면.33) 베네딕토 16세, 2011년 제97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0.9.27.,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44호(2011), 17면.34) 2014년 제100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35) 요한 바오로 2세, 이민에 관한 세계 회의에서 한 연설, 1979.3.15.36)「미래의 사제 양성에서 유동 인구 사목」, 5항. 37)「난민: 연대에의 도전」, 102항.38) 베네딕토 16세, 2012년 제98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1.9.21.,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46호(2012), 115면.39)「난민: 연대에의 도전」, 34항.40)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가톨릭 학교의 문화 간 대화 교육: 사랑의 문명을 위한 조화로운 삶」(Educating to Intercultural Dialogue in Catholic Schools. Living in Harmony for a Civilization of Love), 2013.10.28., 13항, 『가톨릭 학교 교육에 관한 교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2(제1판), 466면. 41) 프란치스코, 2018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7.8.15.,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7호(2018), 102면.42) 프란치스코, 2021년 제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 2021.5.3.,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4호(2021), 91면.<원문 Migrants and Refugees Section, Dicastery for Promoting Integral Human Development, Pastoral Orientations on Intercultural Migrant Ministry, 2022, 이탈리아어도 참조>영어:https://press.vatican.va/content/salastampa/it/bollettino/pubblico/2022/03/24/0209/00443.html#ing이탈리아어: https://press.vatican.va/content/salastampa/it/bollettino/pubblico/2022/03/24/0209/00443.html#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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