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사목위원회
공지사항

다문화 이주민 사목 안내서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이주사목국 다문화 이주민 사목 안내서(Pastoral Orientations on Intercultural Migrant Ministry) 서문이 사목 안내서는 제가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 말한 만남의 문화를 발전시키자는 초대를 구체적으로 전하면서 다문화 사목을 제안합니다. 아울러 다면체의 표상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다면체는 “다름이 공존하는 사회, …… 다름으로 서로 온전해지고 풍성해지며 서로를 밝혀 주는 사회를 나타냅니다. 실제로 모든 이에게는 배울 점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쓸모없거나 불필요한 존재가 아닙니다”(「모든 형제들」, 215항).“우리는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보편적 형제애에 헌신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이 부름은 우리의 보편된 존재에 훨씬 더 충실하겠다는 약속으로 해석됩니다. 제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교황 담화에서 썼듯이, “다양한 외국인들, 이주민들, 난민들과의 만남, 그리고 이러한 만남으로 생겨날 수 있는 문화 간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교회로서 성장하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과 전쟁 등의 크나큰 위기의 시기에 편협하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모든 형제들」, 11항 참조)와 철저한 개인주의(「모든 형제들」, 105항 참조)는 세상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우리의 일치를 깨뜨리거나 분열을 일으킵니다. ‘우리’에게 맞서는 ‘그들’로 치부되는 외국인들, 이주민들, 그리고 실존적 변방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이들이 결국 가장 큰 대가를 치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안내서는 온 인류 가족과 교회를 아우르는 더욱더 넓은 ‘우리’를 제안합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일하면서 더욱더 너른 품으로 받아들이는 교회를 이루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 사목 안내서는 우리가 교회 됨을 체험하는 길을 확장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또한 오래 지속되고 있는 뿌리 뽑힘의 비극을 직시하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환대하고 보호하며 통합하고 증진하라고 우리에게 촉구합니다. 아울러 친교를 위하여 협력하는 기회를 창출하라고 촉구합니다. 이 안내서는 그 영성과 생생한 전례 전통의 풍요로움을 깨닫게 하고 우리의 지역과 본당 안에서 새로운 성령 강림을 살아갈 기회를 우리에게 줍니다.또한 이는 참으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함께 걸어가며 각자의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정체되지 않으며 “내국인과 외국인, 원주민과 외지인을 구별하지 않는” 교회가 될 기회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지상의 순례자이기 때문입니다.우리는 함께 꿈꾸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한 인류로서, 같은 인간 육신을 지닌 길동무로서, 우리 모두를 환대해 주는 같은 땅의 자녀로서, 저마다 신앙이나 신념의 부요함을 지닌 개개인으로서, 저마다 목소리를 지닌 개개인으로서, 모든 이가 형제자매로서 함께 꿈꾸기를”(「모든 형제들」, 8항)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제안은, 이 꿈을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서부터 시작하여, 드넓은 천막과도 같이 땅끝까지 확장하고 이주민과 난민 형제자매들을 품어 안으며 보편 형제애의 정신으로 함께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난민이나 이주민과의 모든 만남이 당신을 만나는 기회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25,35 참조). 주님의 성령께서는 우리가 모든 이를 품어 안아 다양성 안에서 친교를 쌓을 수 있게 하시며, 결코 비인간적 획일화를 강요하는 일 없이 차이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가톨릭 공동체들은 만남의 기쁨 안에서 성장하고 이주민들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삶을 인식하도록 초대받습니다. 바티칸에서2022년 3월 3일프란치스코 서론“새로운 형태의 빈곤과 취약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거기에서 당장 실질적인 이득을 전혀 얻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알아 뵙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 이민[실향민, 난민]은 제게 특별한 과제를 줍니다. 저는, 스스로 모든 이의 어머니로 여기는 국경 없는 교회의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모든 나라에 관대한 개방을 권고합니다. 이러한 개방은 지역 정체성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종합을 창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10항).자기 나라 안에서든 국경을 넘어서든 강제 이주를 겪는 사람들의 필요와 기본권을 다루는 데에 전 세계가 협력하라는 도전을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잘 깨닫고 있습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창출하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이는 모든 형제들, 곧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라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2021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교황 담화에서 말하였듯이, 교회인 우리는 두 가지 주요 도전 과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과제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내적(ad intra)이고 외적(ad extra)인 선교 사명을 이룹니다.내적 선교 사명의 과제는 우리 신앙의 보편성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곧 모든 이를 받아들일 수 있고 가톨릭 교회의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이 저마다 어디에 있든지 교회의 온전한 지체임을 인식할 수 있는 교회를 뜻합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세계 각지에서 도착하는 가톨릭 신자 개개인을 받아들이고, 지역 공동체 안에 그들을 시민이자 동등한 구성원으로 통합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는 우리가 바오로 성인에게서 분명히 들은 말씀 그대로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에페 2,19). 모든 가톨릭 신자는 교회 안에서 능동적 시민으로 여겨지는 온전한 일원이 될 권리를 가집니다. 이는 곧 책임감을 가지고 교회의 삶에 참여하며, 전례를 활성화하고 자기 고유한 종교심과 특별한 문화적 표현으로 공동체들에 다가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첫 단계는 모든 이가 분열이나 계층의 구분 없이 들어갈 수 있도록 천막을 넓혀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모든 이가, 세 위격을 지닌 한 분 하느님의 삼위일체의 풍요로움을 모범으로 삼아 공동체를 윤택하게 해 주는 그들의 차이를 지킬 수 있습니다. 외적 선교 사명의 과제는 참으로 선교하는 교회가 되는 방식입니다. 곧, 도움이 필요한 이들, 버려진 이들, 배척받는 이들, 억압받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이를 인식하고 돌보아야 하는 것은 이것이 주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자선과 사랑을 통하여, 특히 자신이 선택했기 때문이든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든 교회 밖에 있는 이들에게 마음의 회심을 북돋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포용하는 교회가 되라는 부르심입니다.구체적인 개별 공동체 안에서 교회의 삶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일은 그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반영해야 합니다. 공동체에 새로 유입된 이들은 우리에게 본당에 관하여 다시 생각해보라는 도전 과제가 됩니다. 이는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새로 유입된 이들은 외부로부터 부가된 이로 여기는 마을을 표양으로 삼는 본당이 아니라 움직이는 교회, 언제나 다른 이들을 열린 자세로 환영하는 교회를 지향하는 본당으로 다시 생각하라는 도전입니다. 이는 동화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풍요로움에 대한 문제이며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변화하게 하는 길입니다. 어떤 나라에 도착하는 이들이 자신을 이등 시민처럼 느끼지 않고 공동체의 일부로서 교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서 하나의 ‘우리’임을 느껴야 합니다.「다문화 이주민 사목에 관한 사목 안내서」의 목적은 ‘환대하기, 보호하기, 증진하기, 통합하기’라는 네 동사로 명시할 수 있는 행동을 위하여 구체적인 제안과 길잡이를 제공하려는 것입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실존적 변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를 위한 가톨릭 교회의 헌신을 이 네 동사로 집약하셨습니다. “이는 상명하달식의 복지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저마다의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을 보존하는 한편 다름에 열려 있고 인간의 형제애 정신으로 그 다름을 증진하는 법을 아는 도시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 네 동사를 통하여 함께하는 여정에 뛰어드는 문제이기”1) 때문입니다.                 1. 두려움을 인정하고 극복하기“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창세 46,3).두려움은 새로운 상황과 환경으로 향하는 인간과 공동체의 여정에 매우 자연스러운 동반자입니다. 미지를 상징하는 이집트가,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여러 확언에도 야곱을 두렵게 한 것은 당연합니다. 다른 이와의 만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반대를 일으킬 수 있는 그 두려움이 부디 정도를 지나치지 않고 적절하게 고려되고, 언제나 염려하시는 하느님의 개입에 힘입어 극복되기를 바랍니다. 도전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이동하는 많은 힘없는 형제자매들을 실질적으로 환영하는 데에 방해가 됩니다. 낯선 이를 정치적 경제적 안정의 위협이라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들은 대체로, 편협하고 외국인에 대한 혐오적 태도를 가중하면서 지역 공동체들이 이주민과 난민을 비롯하여 다른 이들을 두려워하게 합니다.응답가톨릭 교회는 지역 공동체들이 이주 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고 상호 만남을 위한 적합한 환경을 보장하라고 부름받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1. 사람들의 두려움을 다루기 그리고 이주민과 난민, 그들의 사연, 이주의 근본 원인, 이주의 영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여 사람들이 불안을 극복하도록 돕기.“사회사업가들과 사목 종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지역 주민들에게 복잡한 이민 문제와 외국인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과 적대적 편견에 맞설 필요성을 인식시켜야 합니다.”2)2. 환대와 친절의 모범 사례와 정착 공동체의 온전한 인간 발전에 성공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이주민과 난민의 이야기를 홍보하는 데에 대중매체를 활용하기.“이와 관련하여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들이 책임 있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사실 고정 관념을 없애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여, 일부의 잘못을 고발하고 대다수의 정직과 공정과 선함을 알리는 것이 바로 그들의 몫입니다. …… 커뮤니케이션 매체들 또한 이러한 ‘태도의 변화’를 받아들여 이민과 난민을 대하는 자세의 변화를 촉진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3)3. 이주민과 난민에 관한 공적 담론에서 긍정적인 언어를 적용하고 그들에 대한 잘못된 진술에 맞서 철저한 연구에 기반한 주장들을 전파하기.“정보 매체들은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 특별히 난민, 망명 신청자, 그 밖의 다른 형태의 이민과 관련하여 올바른 용어를 사용할 책임이 있습니다.” 4)4. 더욱더 넓은 우리를 이루고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 형제애의 온전한 표현을 강화하는 데에 형제자매로서, 동등한 인간 존엄을 지닌 이로서 그리고 공동 주체로서 인정되도록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강화하기. “저는 여러분의 사명 곧 모든 가난한 형제자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고, 모든 이주민, 실향민, 난민의 존엄을 선포하고 수호하는 것에 대한 더욱더 깊은 인식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들에 대한 지원은 우리 마음의 선함에서 나온 자선이 아니라 그들에게 합당한 정의의 행동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5)5. 이주에 관한 이야기의 진정한 변화를 향하여, 이주민과 난민들에 대하여 마음이 더욱더 열려 있고 연민 어린 인식을 더욱더 지니는 경향이 있는 청소년과 청년들과 함께하기.“젊은이들이 문화와 만남 속에서 성장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리고 다름 안에서 성장하도록 도우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비교로, 올바른 비교로 성장하는 방식입니다.” 6)2. 만남 증진하기“앞서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루카 18,39).예리코의 눈먼 이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그를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자신을 단념시키도록 두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더욱 큰 소리로 외칩니다. 우리는 만남이 흔히 기피되는 상황 안에 살아갑니다. 현상(status quo)을 유지하고 싶어 하거나 설상가상으로 갈등을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만남은 방해를 받습니다. 또는 우리는 소외된 이들을 공동체를 건설하는 만남에서 배제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 안에서 살아갑니다. 만남을 증진하는 것은 모든 목소리, 특히 가장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냄으로써 “큰 소리로” 만남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도전가톨릭 공동체들은 대체로 많은 이주민과 난민의 도착에 준비되어 있지 않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한편 많은 이주민과 난민은 안전지대와 게토(ghetto) 형성에 의존하면서 지역 사회와 통합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응답가톨릭 교회는 참된 ‘만남의 문화’를 증진하면서 지역 공동체와 새로 유입된 이들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라고 부름받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1. 불평등에 맞서는 데에 선제적으로 참여하기와 버리는 문화에서 공동체 생활의 구성적 요소인 돌봄과 만남의 문화로의 문화적 전환을 촉진하기.“자기 신앙에 대한 강한 확신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존엄과 저마다의 모든 필요를 최우선으로 삼음으로써 불의로 야기된 장애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리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7)2. 연계된 모든 사람을 위한 풍요로운 만남과 문화적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서로 연결된 세계적 현상으로서의 이주에 대한 이해를 뒷받침하기.“이민 집단들과 지역민들을 단순히 평행선상에 놓게 되면 문화 간에 벽이 생기거나 그들 사이에 단순히 피상적인 관계나 묵인의 관계가 수립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달리 문화들이 서로를 풍요롭게 하도록 장려하여야 합니다. 곧, 참된 이해와 사랑의 정신으로 서로의 문화를 알고 서로의 문화에 개방적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8)3. 학교, 교리서 수업, 젊은이 모임, 신앙 교육 등 가톨릭 교육의 모든 분야에서 도움을 받는, 생명을 주는 만남들을 위하여 사람들을 준비시키기.“남녀 축성 생활자들, 공동체, 평신도 단체들, 교회 운동들, 사목 종사자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방인에 대한 환대와 연대와 개방성을 가르칠 의무를 느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민이 교회에 더욱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신자들이 여러 문화와 종교에 있는 말씀의 씨앗(semina Verbi)을 발견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9)4. 스포츠 행사, 축제, 그 밖의 사회 행사들과 같이 지역 주민들과 그 지역에 새로 유입된 이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고 문화 다양성을 기념할 기회를 가지는 만남의 장을 마련하도록 본당들을 독려하기. 그들의 특별한 감수성과 필요를 감안하면서, 그 지역 젊은이들과 새로 유입된 젊은이들을 위한 특별 사목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그러므로 개별 교회들은 복음을 위하여, 이민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며 신자들이 편견과 선입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목 활동들을 통하여 이민들을 더욱 따뜻이 맞아들이도록 요구받습니다.” 10)5. ‘다리 건설자’ 곧 지역민과 새로 유입된 이들 사이에 풍요로운 대화와 나눔의 촉진자로서 사목 일꾼들을 훈련하기. 이는 본당 구역 안에서 새로 유입된 이들과의 만남을 이루고 그들이 지역 공동체의 능동적 구성원이 되도록 초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교회 공동체, 본당 공동체, 교구 공동체 사이에 그리고 여러분의 주교회의들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고자 쏟은 모든 노력은 교회 측에서의 예언자적 행동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교회 헌장 1항)가 될 것입니다.” 11)3. 경청하기와 연민 갖기“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 12,15).참된 경청은 언제나 동정과 공감의 활동입니다. 이는 경청하는 이는 자신의 체험을 나누는 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하고, 인간적 체험은 사람의 마음에 반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다른 이를 향하고 다른 이와 함께 하는 감정과 돌봄의 자세이며, 이 자세는 사람들을 연결하여 주고 또 공감하는 인간 공동체를 만듭니다. 도전의심이나 준비 부족 때문에, 이주민과 난민과의 만남을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하는 데에 필요한 공감과 연민이 가로막혀 지역 가톨릭 공동체들은 이주민과 난민의 체험과 필요, 두려움과 열망을 경청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응답가톨릭 교회는, 궁핍한 이주민과 난민을 만나는 모든 상황을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 만나고 (마태 25,32 참조)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유일한 기회로 여기면서, 이주민과 난민에게 열심히 귀 기울이고 연민을 키워가라고 부름받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1. 지역 가톨릭 공동체들 안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함께 깊이 상처 입은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돌봄의 문화 증진하기.“‘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 참조: 마태 18,5; 루카 9,48; 요한 13,20). 이 말씀으로 복음사가들은, 그리스도 공동체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커다란 도전이 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상기시켜 줍니다. 12)2. 궁핍한 이주민과 난민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고 공감과 연민을 키우도록 본당 신자들, 특히 청소년과 청년들을 초대하기.“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그리고 특히 젊은이들은 폭력을 피해 나와 새로운 생활 방식에 부딪치고 통합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많은 형제자매를 도와주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선포는 위안과 희망과 ‘충만한 기쁨’(요한 15,11 참조)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13) 3. 이주 사목을 위한 사목 일꾼들의 훈련의 하나로 상담과 경청 기술을 포함하기.“따라서 처음부터 신학교에서 ‘영성적 신학적 법률적 사목적 양성이 …… 유동 인구 사목을 통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14) 4. 가톨릭 보건 전문가와 사회 전문가들이 궁핍한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구체적인 봉사를 개발하고 그들 사명의 하나로 사목 일꾼들에게 훈련을 제공하도록 북돋기.사회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 경제학자, 법학자, 교회법학자, 윤리학자, 그리고 신학자들이 함께 모여서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사목 실무자들과 더불어 비교하면서, 현상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거기에 대처할 수단을 제시하는 데에 공헌하게 되는 것입니다. 15)4. 우리의 보편성(catholicity) 실천하기“유다 사람에게는 다른 민족 사람과 어울리거나 찾아가는 일이 불법임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사람을 속되다거나 더럽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사도 10,28).성령에 힘입고 로마인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의 요청을 받은 베드로는, 다른 민족과 종교에 속한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새로운 다른 길을 보여 주셨다는 것도 공개적으로 시인합니다. 그 길은 그리스도께서 내어 주시고 교회 안에서 보편적인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구원에 참여하라고 다른 민족들을 초대하는 길입니다. 이는 성령의 도움으로, 교회가 걸어가라고 부름을 받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 길입니다. 도전일부 지역 가톨릭 공동체 안의 이미 규격화된 획일성과 민족주의적 화법을 지향하는 경향은, 본질상 보편적이고 서로 다른 언어와 전통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는 교회의 참된 의미와 충돌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분열을 초래하고 교회의 보편적 친교의 참된 표현을 촉진하려는 노력을 위태롭게 합니다. 응답가톨릭 교회는 그 지체들의 다양성을 인정되어야 하는 풍요로움으로, 더욱더 가시적으로 ‘보편적’이 되는 기회로, 또한 다른 문화 전통들을 존중하는 활기찬 전례로써 거행되어야 하는 선물로 이해하라고 부름받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과 성찰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1. 삼위일체 하느님의 형상 안에서, 다양성 속의 친교로서 교회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와 모든 이의 어머니로서, 세례 받은 모든 이를 위한 하나의 집이자 가정으로서 교회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기. “이 보편성의 힘으로, 각 부분이 그 고유한 은혜를 다른 부분들과 온 교회에 가져다주어, 전체와 각 부분은 모든 것을 서로 나누며 일치 안에서 충만을 함께 도모하는 가운데에 자라나게 됩니다.”16)2. 지역 가톨릭 공동체 내의 문화적 종교적 표현의 진정한 다양성을 서로 다른 전통에서 배우고 창의적 의사소통을 통한 문화 간 이해를 촉진하는 기회로 받아들이기. “일치의 성사인 교회는 이념이나 인종적 장벽과 분열을 극복하고, 대화와 상호 수용을 통하여 차이점을 올바로 직시하면서 진리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모든 민족과 모든 문화에 선포합니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적 본체들은 각자의 고유한 긍정적 요소들을 버리지 말고 그것을 온 인류를 위한 일에 사용함으로써 보편적인 논리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논리는 모든 개별 교회와 관계되며, 세 위격의 친교를 각 위격의 충만한 생명에 의지하는 삼위일체 안에서 관상되는 다양성 안의 일치를 강조하고 드러냅니다.” 17)3. 가톨릭 영성과 전통의 풍요로움을 인정하도록 전례 거행을 위한 적절한 공간을 보장하기와 다양한 거행에 참여하도록 신자들을 초대하기. “교회의 일치는 같은 기원과 언어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와 민족의 사람들을 한 백성으로 함께 묶어 그들에게 같은 주님에 대한 신앙을 주고 같은 희망으로 부르는 오순절의 성령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18)4. 다양한 민족 배경을 가진 모든 신자에게 알맞은 사목–직무자, 구조, 프로그램 –을 제공하는 것은 다양성 안에서 친교를 쌓으려는 장기적 통합 과정의 첫걸음으로 언제나 이해되어야 한다. “주교회의들은, 오늘날 이주민들과 여행자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목적을 위임받는 사제를 임명하거나 이러한 목적으로 설립된 특별 위원회를 마련하라고 요청받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러한 사람들의 영적 사목의 연구과 방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19)5.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의 실행을 촉진하도록 직무자와 사목 일꾼들의 능력과 역량을 키우는 구체적인 교육하기. “이러한 종류의 사목 활동에서는 그 성격상으로나 능률상으로나 특수한 전문적 예비 교육이 불가피한 필수 조건인 것입니다. …… 신학교와 그 밖의 사제 양성 기관들에서 미래의 사제들을 위하여 영성적, 신학적, 법률적, 사목적인 교육을 실시하면서, 유동인 사목을 통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갈수록 뚜렷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20)6. 본질상 보편적인(catholic) 교회, 그리고 그 실천된 표현 안에서 더욱더 전 세계적인(universal) 교회에 봉사하도록 신학생들을 교육하기, 신학생들이 신자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능력을 높이도록 신학 과정 안에 구체적인 교과 과정을 포함시키기, 이주민들의 출신 국가들에서 신학생들의 사목 현장 체험을 촉진하기.“이주하는 이들을 [예를 들어, 그들의 사고방식, 생각, 문화, 영성적 삶에 대하여] 잘 알고 그들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이주민 돌봄을 실천하면 참으로 큰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주민들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제들을 통한 이주민 돌봄의 이미 명백한 이점이 확인되었고, 그 유용성이 보이는 한 이를 유지해야 합니다.” 21)5. 이주민을 축복으로 이해하기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3,2). 하느님 은총은 흔히 놀랍고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체험됩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마므레에서 세 사람을 만난 것(창세 18장 참조)을 언급하며, 순례자들과 이방인들이 하느님 은총을 전하여 주는 예상하지 못한 통로이자 전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시고 다시 활기를 북돋아 주고자 하시는 이 소중한 통로와 연결되려면, 이동하는 사람들과 이주민들에 대한 환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도전엄청난 수의 이주민이 유입되는 나라들에는 많은 가톨릭 공동체가 높은 비율의 이주민으로 구성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본당 신자가 거의 모두 외국인입니다. 게다가 일부 교구에서는 성사와 사목의 지속성을 이미 외국에서 온 사제들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축복으로 여겨지기 어렵고, 세속주의 때문에 영적 사막이 예사롭지 않게 넓어지고 있는 곳에서 특히 교회 생활을 다시 꽃피우는 좋은 기회로 좀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응답가톨릭 교회는 가톨릭 이주민들이 지역 교회에 새 삶을 가져다주는 길로 제공하는 기회들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라고 부름받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1. 이주민들은 새로운 활력을 주는 주체가 될 수 있으므로, 가톨릭 공동체 안에서 이주민의 존재를 인정하기와 그들의 존재를 축복이며 교회 생활을 활기차게 할 수 있는 하느님 은총에 개방되는 기회로 이해하도록 촉진하기. “이민의 특수성은 우리에게, 성령을 통하여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되는 오순절의 형제애를 다시 한번 실천하도록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이민의 경험은 죽음과 부활로 더 이상 종도 이방인도 없는(갈라 3,28 참조) 새로운 인류가 창조되는 파스카 신비에 대한 선포일 수 있습니다.” 22)2. 이주민들이 자국 공동체에서 습득한 기술과 전문지식을 제공하여 자신들의 풍요로움이 지역 공동체 삶에 소중한 기여라는 사실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기. “…… 무수한 이민들이 처음부터 이 사명에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에서 활동한 사도들의 사업을 지원해 준 최초의 선교사들은 이민들이었습니다. 이주 현상은 항상 교회의 역사 전반에 걸쳐 그리고 온 나라들의 복음화에 있어서 신앙을 전수시키는 효율적 방도로서 기여해 왔습니다. 간혹 번창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사제의 영도력 하에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자신들의 고달픈 삶의 시련과 희생들을 직면할 수 있게 해 주는 용기를 하느님에게 간청하기 위하여 초라한 건물 안에 함께 모인 이민들의 조그마한 거류민 집단으로서 출발하였습니다.” 23)3. 가톨릭 이주민들이 도착한 나라에서 참된 선교사, 자기 신앙의 증인, 복음의 전달자가 되도록 준비시키기. 그러한 사명은 효과적인 교회 간 협력을 통하여 인정받고 증진되며 지원받아야 한다. “난민과 강제 이주민이 복음화를 위한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이들입니다. …… 그들의 의식을 함양하고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증언의 가치를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복음을] 분명히 선포하되, 모든 경우에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여 타인을 온전히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24)4. 가톨릭 이주민들이 본당 사목 평의회와 재무 평의회와 다른 사목 책임에 참여하면서 지역 본당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촉진하기.“이주민들은 자신들이 교회의 돌봄을 받는 이들일 뿐만 아니라 교회 사명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그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특히 정착의 초기 단계에서 그리스도께 헌신하며 사는 가운데에 직면하는 어려움을 경감시켜 주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이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하도록 격려합니다.” 25)5. 이주민 증가에 더욱더 효과적으로 응답할 새로운 사목 구조를 계획하기. 예를 들어, 다양성으로 풍요로워진 하나의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하는 사목 프로그램을 지닌 다문화 본당 계획하기. “여기에서 통합 사목은 무엇보다도 다른 문화와 민족들을 존중할 줄 아는 친교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 이런 바탕 위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민들과 외국인들에게 사목적 도움을 주는 문화 간 민족 간 또는 예법 간 본당 사목구. 이렇게 하여 전통적인 속지적 본당 사목구는 민족 간 문화 간 체험을 위한 특별하고 안정적인 장소가 되는 한편, 개별 집단들은 일종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26)6. 이민 2세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중요한 존재와 지역 공동체 안에서 그들이 촉진시킬 수 있는 문화 간 동력을 고려하는 혁신적인 교리교육과 사목 프로그램 개발하기“우리는 두 문화를 아우르는 이들인 이주민과 이주민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요청합니다. 이는 특히 그들이 공동체 안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봉사할 기회를 주고 그들 가운데 성소를 북돋고자 하는 것입니다.” 27)7. 지역 신자들과 새로 유입된 이들 간의 통합에 활력을 불어넣는 노련한 중재자가 되게 힘을 길러주도록 지역 공동체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외국인 사제들을 위한 특별 교육을 제공하기.“교구 간의 신중하고 관대한 협력은 이 중대한 직무에 적합한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보내는 데에 중요합니다. 그들을 파견받는 교구의 교육과 환대에 관한 지침은 그들을 파견하는 교구와 공동으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파견받는 교구에서 머무는 동안 여러 나라의 사제와 수도자는 광범위하고 신중한 예비 교육과 아낌없는 환대를 받아야 합니다.” 28)8.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을 실행할 수 있도록 직무자들과 신학생들을 교육하기.“이러한 준비는 환대의 예언적 계시, 그리스도교 형제애의 복음적 수칙, 인권의 신학적 바탕, 인간 존엄에 대한 완전한 확신을 그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분명한 동기를 지닌 교육은, 이주민들의 종교, 문화, 또는 사회적 배경이 무엇이든지 그들을 위한 교회의 지침이 지체 없이 참된 사제의 정신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입니다.” 29)6. 복음화 사명 수행하기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사도 11,17)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모든 이에게 예외 없이 예수님 안에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인 생명을 주는 선물을 주십니다. 교회는 왜곡된 종교적, 자기 민족 중심적 원칙을 명목으로 이 보편적 선물을 제한하여 하느님의 사명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이 사명은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께서는 이 사명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교회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에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서 이 사명을 수행합니다.도전많은 가톨릭 공동체는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신앙이 없는 이주민과 난민의 도착을 자신들이 세워놓은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여깁니다. 이는 그들과의 그 어떤 의미 있는 교류도 방해하는 불신과 의심의 태도로 종종 이어집니다. 응답가톨릭 교회는,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신앙이 없는 많은 이주민과 난민의 존재를 증언과 자선을 통한 교회의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는 섭리적 기회로 여기도록 부름받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1. 시대의 표징이자 교회가 어떻게 모든 이를 포용할지 생각하는 기회인 이주에 대한 선교학적 성찰을 촉진하기 그리고 그러한 성찰의 결과를 신자들에게 전파하기.“이주민과 난민 사목에 대한 ‘동기’를 주기 위하여 저는 여러분을 시대의 표징인 이주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심화하도록 초대합니다.” 30)2. 만남은 가톨릭 신앙을 깊게 하고 견고하게 할 수 있는 기쁜 증언의 구체적인 기회를 나타내기에,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신앙이 없는 이주민과 난민과의 만남에 지역 신자들을 준비시키기.“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하나의 커다란 성취인 관용의 정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존중을 증언하고 실천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능하고 적절하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정중히 알리기’ 위하여, 다른 출신,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나눔을 지향하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31)3.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는 적절한 방법으로 지역 공동체 안에 모든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환대하는 태도와 자선 활동을 증진하기. “이러한 까닭에, 일반적으로 힘없는 이들인 이민과 난민의 존재는 우리에게 하나의 초대가 됩니다. 오늘날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에 안주해 버릴 위험에 놓여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과 인류의 일부 본질적 차원들을 회복시키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사랑의 실천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 줍니다(야고 2,18 참조). 가장 고결한 사랑은 보답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조차 없는 이들에게 실천하는 사랑입니다.” 32)4. 일반화와 편견을 뛰어넘어 다른 종교에 대한 타당하고 균형 잡힌 지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종교 간 대화에 참여하도록 지역 공동체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점점 더 다민족,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는 세상에서 인류 형제자매들이 이루는 이 한 가족 …… 안에서 정당한 차이를 존중하며 평화롭고 유익하게 공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종교인들도 대화에 참여할 것을 촉구받고 있습니다.” 33)5. 교구와 본당 차원의 사목 프로그램에 이주민과 난민 선교를 포함하기. “이주는 새로운 복음화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파스카의 신비 안에 예고된 새로운 인류의 성장을 위한 전망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인류에게는 모든 타향이 고향이고 모든 고향이 타향입니다.” 34)6.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을 실행할 수 있도록 직무자들과 신학생들을 교육하기.“이민의 사도직은 이러한 파견된 ‘선교사들’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온 지역 교회, 사제, 수도자, 평신도의 일입니다. 35) 그리고 이는 너무 중요하기에 신학적, 사목적, 조직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36)7. 친교를 향한 협력“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요한 10,16).선교하는 제자이자 교회의 세례 받은 지체인 우리의 소명은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서 다양성 안에서의 친교와 일치를 키우고 강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양 떼’라고 통상 여겨지는 이들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돌보시는 목자이십니다. 그렇다면 친교를 향한 길은 보편적 형제애를 향한 여정이 됩니다. 도전 다양한 가톨릭 단체들이 펼치는 이주민과 난민을 지원하는 활동은 종종 단편적이고 조직적이지 못합니다. 이는 사도직의 효과를 위태롭게 하고 내부 분열을 일으키며 자원 손실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유사한 결점들은 이주민과 난민을 돕는 데에 종사하는 다른 단체들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칩니다.응답가톨릭 교회는 모든 가톨릭 단체 사이에서 그리고 가톨릭 단체들과 다른 모든 단체들 사이에서 효과적인 협력을 증진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1. 지역 교회와의 친교 안에서 효과적인 활동을 위한 전망과 계획을 공유하도록 모든 이가 부름받은 자리인 정기 회의를 통해서 이주민 사목에 관여하는 모든 가톨릭 단체의 노력들을 확실히 조율하기. “그러므로 지역 교회가, 헌신 지속성의 정도에 따라 발생하는 미래의 도전 과제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목적에서 가톨릭 자선 단체들은 서방/동방 교회 교구장의 지도 아래 지역 교구 조직과 언제나 긴밀히 협력하며 일하여야 한다. 국제기구들에 관하여 교황청 관할 부서가 조언과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37) 2. 공동 사목 책임을 바탕으로 하여, 이주민과 난민들이 출발하고 경유하며 도착한 나라들의 지역 교회들 사이의 협력을 강화하기. 궁극적으로 이는 이주민과 난민을 돌보는 하나의 교회이다. “출신지와 경유지와 도착지의 교회들도 떠나는 이들과 도착하는 이들을 위하여, 특히 여정 중에 자신들을 환대하는 이웃 속에서 그리스도의 자애로운 모습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협력을 증대하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합니다.” 38)3. 같은 지역 내에서 사목하는 그리스도교 지도자들 사이에 공동 사목 계획을 증진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기도와 활동 모두에서 교회 일치 협력을 강화하기. “이러한 자선 활동에서 다양한 그리스도교 교회들과 다양한 비그리스도교 종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력은 인류 가족의 더욱 깊은 일치를 찾고 실행하는 데에 새로운 발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39)4. 이주에 대한 성찰을 함께 하고자 지역 차원에서나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종교 간 모임을 더욱 증진하기, 이주민과 난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보편적 형제애의 메시지를 널리 알리기. “이러한 대화는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되며, 사람들이 타 종교를 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대화는 단순히 말을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믿음을 지닌 개인과 공동체들과 나누는 모든 유익하고 건설적인 종교 간 관계를 포함하는 것으로, 상호 이해를 그 목적으로 합니다.” 40)5. 더 넓은 우리를 함께 추구하고자, 다른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기관들과 시민 사회 기관들, 정부들, 국제기구들 사이의 공동 행동과 협력을 증진하기.“교회의 사목 전통에 따라 교회는 앞서 제안한 모든 계획을 실현하는 데 헌신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결과를 위해서는, 정치 공동체와 시민 사회가 반드시 각자 지닌 책임에 따라 기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41)결론모든 두려움, 특히 잘못 이해된 개념들을 바탕으로 생긴 두려움에서 벗어나 성장하면서, 가톨릭 공동체들은 참된 ‘만남의 문화’를 증진하며 새로 유입된 이들과 함께 다리를 건설하도록 부름받습니다. 우리는 이 문서를 읽는 독자들이 이주민과 난민의 존재가 우리 공동체에 가져다주는 풍요에 대한 인식을 체험을 통하여 심화시키도록 이끌면서, 그들이 참된 다리 건설자가 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가톨릭 공동체는, 어려움에 놓인 이주민과 난민을 만나는 모든 상황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회로 여기면서(마태 25,35 참조), 이주민들이 그들 공동체에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는 기회들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며, 다른 문화 전통을 예우하며 생생한 전례를 거행함으로써 다른 이들에 대한 존중을 키우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가톨릭 공동체들은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신앙이 없는 많은 이주민과 난민의 존재를 증언과 자선을 통한 교회의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는 섭리적 기회로 여기도록 초대를 받습니다. 이렇게 하여 가톨릭 공동체들은, 이사야 예언자가 하느님 백성에게 보여 준 표상과 초대에 기여하면서, 모든 단체 사이의 효과적 협력을 자연스럽게 촉진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 ……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이사 56,6-7). 하느님 은총으로 가톨릭 공동체들 사이에서 이주민들과 난민들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음에 감사드리며, 교회는 교회 지체들의 다양성을 감사하여야 할 풍요로, 그리고 이주한 이들의 기여를 우리 신앙의 보편성을 더욱 생기 넘치고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기회로 계속해서 강조할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모든 지체에게 이 호소는 우리의 ‘보편된’ 존재에 훨씬 더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합니다. …… 성령께서는 우리가 모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양성 안에서 치교를 이루며, 몰개성적인 획일화를 강요하지 않고 다름이 화합을 이루게 해 주십니다. 다양한 외국인들, 이주민들, 난민들과의 만남, 그리고 이러한 만남으로 생겨날 수 있는 문화 간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교회로서 성장하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세례 받은 모든 이는, 어디에 있더라도 마땅히 지역 교회 공동체 그리고 하나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이고, 한 지붕 아래 사는 식구이며, 한 가정의 일원입니다.” 42)참으로 이 안내서의 목적은, 우리가 아래에서부터 시작하고 우리의 형제자매인 이주민과 난민을 환대하고 보호하며 증진하고 통합하도록 우리 나라들에서 가장 멀리까지 뻗어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며, 형제애와 보편성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또한 즈카르야와 함께 이렇게 노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루카 1,73-75).1) 프란치스코, 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2019.4.3.2)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훈령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Erga Migrantes Caritas Christi), 2004.5.3., 41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32호(20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제1판), 109면.3) 프란치스코, 제100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3.8.5.,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0호(201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1면.4)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와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난민과 강제 이주민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환대하십시오」(Welcoming Christ in Refugees and Forcibly Displaced Persons), 2013.6., 42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0호(201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29면.5) 요한 바오로 2세, 국제가톨릭이주위원회 회합 참가자들에게 한 연설, 2001.11.12.6) 프란치스코, 밀라노 산 카를로 대학의 학생, 교사, 부모와의 대화, 2019.4.6.7)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와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난민: 연대에의 도전」(Refugees: a Challenge to Solidarity), 25항, 바티칸 시국, 1992.8) 요한 바오로 2세, 제91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04.11.24.,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32호(2005), 31면.9)「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96항.10)「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100항.11) 프란치스코, 제34차 세계청년대회를 맞이하여 파나마 사목 방문, 중앙아메리카 주교단과의 만남, 2019.1.24.12) 이 말씀은 …… 하느님께 이르는 확실한 길을 보여 줍니다.” 프란치스코, 제103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6.9.8.,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5호(2017), 129면. 13) 베네딕토 16세, 제98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1.9.21.,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46호(2012), 115면. 14)「난민과 강제 이주민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환대하십시오」, 101항.15) 교황청 이주사목위원회, 주교회의에 보내는 회람 「교회와 유동 인구」(The Church and Human Mobility, A Circular Letter to the Episcopal Conferences), 1978.5.26., 40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7호(1998), 171면.1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13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글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7(제3판).17)「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34항. 18)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103항.19) 교황청 주교성성, 「이민 사목에 관한 훈령」(Instructio De Pastorali Migratorum Cura), 1969.8.22., 『사도좌 관보』(Acta Apostolicae Sedis: AAS) 61(1969), 614면.20)「교회와 유동 인구」, 33항. 21)「이민 사목에 관한 훈령」.22)「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18항. 23) 요한 바오로 2세, 1989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 1989.9.10., 『회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제57호(1990.3), 8면, 수정 번역.24)「난민과 강제 이주민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환대하십시오」, 88항. 25) 호주 주교회의, ‘이주민과 난민 사목에 관한 성명서’(Statement on the Pastoral Care of Migrants and Refugees), 2000. 26)「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93항.27) 미국 주교회의,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희망의 여정을 함께하는 이들입니다’(Strangers No Longer; Together on the Journey of Hope), 2003. 28)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희망의 여정을 함께하는 이들입니다’.29)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미래의 사제 양성에서 유동 인구 사목」(Pastoral Care of People on the Move in the Formation of Future Priests), 바티칸 시국, 1986.30) 프란치스코, 가톨릭 대학교 국제 연합회 회원들에게 한 연설, 2017.11.4.31)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9항. 32) 프란치스코, 2019년 제105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9.5.27.,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0호(2019), 85면.33) 베네딕토 16세, 2011년 제97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0.9.27.,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44호(2011), 17면.34) 2014년 제100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35) 요한 바오로 2세, 이민에 관한 세계 회의에서 한 연설, 1979.3.15.36)「미래의 사제 양성에서 유동 인구 사목」, 5항. 37)「난민: 연대에의 도전」, 102항.38) 베네딕토 16세, 2012년 제98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1.9.21.,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46호(2012), 115면.39)「난민: 연대에의 도전」, 34항.40)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가톨릭 학교의 문화 간 대화 교육: 사랑의 문명을 위한 조화로운 삶」(Educating to Intercultural Dialogue in Catholic Schools. Living in Harmony for a Civilization of Love), 2013.10.28., 13항, 『가톨릭 학교 교육에 관한 교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2(제1판), 466면. 41) 프란치스코, 2018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 2017.8.15.,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57호(2018), 102면.42) 프란치스코, 2021년 제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 2021.5.3.,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64호(2021), 91면.<원문 Migrants and Refugees Section, Dicastery for Promoting Integral Human Development, Pastoral Orientations on Intercultural Migrant Ministry, 2022, 이탈리아어도 참조>영어:https://press.vatican.va/content/salastampa/it/bollettino/pubblico/2022/03/24/0209/00443.html#ing이탈리아어: https://press.vatican.va/content/salastampa/it/bollettino/pubblico/2022/03/24/0209/00443.html#it

2023.11.01 상세보기

2023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기념 행사 (2023년 9월 24일, 수원교구청 및 정자동주교좌 성당)

2023.08.31 상세보기

<담화> 제109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담화

제109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담화(2023년 9월 24일)   이주할지 또는 머무를지 선택할 자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사회의 발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이웃을 더 잘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새로움을 배척하는 안타까운 모습도 자주 발견됩니다. 현대 사회 안에서 이주는 필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지며,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채워 주는 순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이주하여 먼 타지에서 열심히 일하고 생활하며 그 사회에 필요한 부분들을 훌륭히 채우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강제 이주’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올해 ‘제109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의 주제는 “이주할지 또는 머무를지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 whether to migrate or to stay)입니다. 사회 안에서 삶의 자리를 잃고 내쫓겨야만 하는 많은 이를 위하여 교회는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느님 모습을 닮은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협력하여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제109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에서 이집트로 피난 갔던 예수님 가정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마태 2,13 참조). 이 성가정은 자유롭게 이주를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전쟁, 환경, 정치, 종교, 가난 등의 이유로 자신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자리를 잃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제90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에서 ‘이주민과 난민을 위한 평화의 구체적인 조건을 갖추려면, 무엇보다도 이주하지 않을 권리, 곧 모국에서 인간의 품위를 지니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지키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대 사회 안에서 ‘강제 이주’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가장 안전하여야 할 삶의 자리에 두려움과 절망이 찾아올 때 그들은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볼 때, 삶의 자리를 빼앗기고 주거지를 옮기도록 내몰리는 이들은 거의 언제나 힘없고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주하여 오는 이들을, 우리도 공동의 책임을 느끼며 따뜻이 맞아들이고 그들의 인권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국가 사이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3년 전 제106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에서 환대, 보호, 증진, 통합에 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자신의 나라를 찾아오는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우리에게 촉구하십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이주민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내쫓기거나 일터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이 권리를 되찾아 주는 것은 단순히 이주민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사회적 폭력을 피하여 자신의 자리를 떠나야만 하였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회 안에 특별히 더 가난하고 약한 이들인 이주민과 난민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의 권리를 지켜 주어야 합니다.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자녀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며, 특히 사회적 압박 없이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그들이 가지게 되는 작은 희망들은 우리 사회를 더욱더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본당 차원과 교구 차원의 시노드 경험을 통하여 교회 공동체의 쇄신과 새로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지키는 가운데 성장하였습니다. 교황께서 강조하시는 ‘함께 가는’ 시노드 정신은 우리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경청과 배려로 다양성 안에서 많은 일치의 열매를 맺는 시노드 교회처럼, 이주민과 난민이 우리와 다른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같은 한 자녀로서, 서로 친교와 연대를 통하여 존중하고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간다면 교회와 사회 안에서 함께 풍요로운 열매를 맺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우리가 새로운 것에 대하여 기대도 하지만 두려움도 가지듯이, 이 땅을 밟는 많은 이주민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의 은총과 공동체의 사랑으로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받은 사람이 더 많이 사랑한다는(루카 7,41-43 참조) 예수님의 말씀처럼 여러분이 가진 그 사랑의 마음으로,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향한 위로와 사랑을 보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 참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23년 9월 24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위원장 정 순 택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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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2023년 제109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교황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제109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2023년 9월 24일)이주할지 또는 머무를지 선택할 자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우리 시대에 이주의 물결은 복합적이고 다양한 현상의 표현으로, 이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출발부터 도착까지 여러 이주 단계에 대하여 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비롯한 모든 측면에서 면밀히 분석하여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노력에 기여하고자 제109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에서, 본국을 떠나는 선택에 언제나 지표가 되어야 할 자유를 다루기로 하였습니다.“떠날 자유와 머무를 자유”는, 이탈리아 주교회의가 몇 해 전에 오늘날 이주의 도전에 대한 구체적 응답으로 마련하였던 연대 계획의 제목이었습니다. 개별 교회에 대한 주의 깊은 경청을 통하여 저는 그러한 자유의 보장이 많은 지역의 공통된 사목적 관심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마태 2,13).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특징지었던 수많은 이주는 물론이거니와 성가정의 이집트 피신도 자유로운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주는 언제나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하지만 많은 경우에, 심지어 오늘날조차 그렇지 못합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분쟁이나 자연재해, 또는 더 단순하게는 모국에서 품위 있고 번영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기에 떠나도록 내몰리고 있습니다. 2003년에 이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주민과 난민에 관한 평화의 구체적인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 사람들의 이주하지 않을 권리, 곧 모국에서 인간의 품위를 지니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진지하게 노력하여야 합니다”(제90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 3항).“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과 재산을 가지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야곱과 그의 모든 자손이 함께 들어갔다”(창세 46,6). 심각한 기근 때문에 야곱과 온 가족은 이집트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서 야곱의 아들 요셉은 그들 가족의 생존을 확보하였습니다. 오늘날 강제 이주를 일으키는 가장 눈에 띄는 원인은 박해, 전쟁, 기상 현상, 극심한 빈곤 등입니다. 이주민들은 가난하기에, 또는 두려움이나 절망 때문에 피신합니다. 이러한 원인들을 제거하여 강제 이주를 종식하려면 각자 지닌 책임에 따라 모든 이가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또 나아가 어떤 행위를 그만두어야 하는지 묻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군비 경쟁, 경제적 식민주의, 다른 이들의 자원 약탈, 우리 공동의 집 훼손을 멈추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사도 2,44-45).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이상은 오늘날의 현실과 꽤 거리가 있는 듯합니다! 이주가 참으로 자유로운 선택이 되게 하려면, 모든 이가 공동선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기본권을 존중받으며 온전한 인간 발전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할 때라야만 우리는 모든 이가 저마다 개인이든 가정에서든 품위 있고 성취하는 삶을 살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주된 책임은 모국과 좋은 정치를 실현하도록 부름받은 모국의 지도자들에게 있음이 분명합니다. 좋은 정치란 투명하고 정직하며 미래 지향적이고 모든 이에게, 특히 가장 힘없는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모국의 지도자들은 천연자원과 인적 자원을 강탈당하지 않고 소수의 이익을 불리려는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나 좋은 정치를 실현할 권한을 부여받아야 합니다. 이주할지 또는 머무를지 선택할 수 있는 여건에서는, 그 선택에 대하여 잘 알고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도록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수많은 남성과 여성, 어린이가 위험한 환상에 빠지거나 파렴치한 인신매매범들의 희생자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이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아야 한다”(레위 25,13).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년의 경축은 집단적 정의 행위를 의미하였습니다. “모든 이가 모든 부채를 탕감받고 땅을 되찾으며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서 자유를 누릴 기회를 다시 얻어 본디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2016.2.10.). 2025년 희년을 향하는 우리가 희년 경축의 이러한 측면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이가 이주로 내몰리지 않을 권리를, 곧 모국에서 평화롭고 품위 있게 살아갈 기회를 누리도록 보장하려는 각국 그리고 국제 사회의 공동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권리는 아직 법제화되지 못한 문제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권리의 보호는 국경을 뛰어넘는 공동선에 대한 모든 나라의 공동 책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이 세상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기에, 경제적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발전은 모든 나라가 창출할 수 있는 나눔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오랜 과정이 필요한 이 권리가 보장되는 날까지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여전히 이주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 이 말씀은 이주민에게서 단순히 어려움에 놓인 형제자매만이 아니라 우리의 문을 두드리시는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알아보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권고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주가 어떤 경우에도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가 되도록 보장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이주민 저마다의 존엄을 최대한 존중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는 장벽이 아니라 다리를 건설하고, 안전하고 정규적인 이주를 위한 통로를 넓히면서, 이주의 물결을 있는 힘껏 더 잘 동반하고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모국이든 타국이든 우리가 미래를 이루어갈 자리로 선택한 어디에서든, 중요한 것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배제하지 않으며 언제나 모든 이를 환영하고 보호하며 증진하고 통합할 준비가 된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교회인 우리가 시작한 이 시노달리타스의 길은, 수많은 이주민과 난민을 포함한 가장 힘없는 이들 안에서 우리 형제자매로서 사랑받고 보살핌받아야 할, 우리 여정의 특별한 동반자를 알아보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우리는 함께 걸어야만 멀리 갈 수 있고 우리 여정의 공동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2023년 5월 11일프란치스코 기도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저희에게 은총을 베푸시어정의와 연대와 평화를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게 하소서.그리하여 하느님의 모든 자녀가이주할지 또는 머무를지 선택할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저희에게 용기를 주시어이 세상의 온갖 위협을 규탄하게 하시고주님 피조물의 아름다움과 저희 공동의 집의 조화를 깨뜨리는모든 불의와 싸우게 하소서.성령의 힘으로 저희를 돌보시어저희가 하느님의 자비하신 사랑을저희 여정 안에 자리한 모든 이주민에게 드러내게 하시고마음 안에 그리고 모든 상황에만남과 돌봄의 문화를 전파하게 하소서.<원문: Message of His Holiness Pope Francis for the 109th World Day of Migrants and Refugees 2023, Free to Choose Whether to Migrate or to Stay, 2023.5.11., 이탈리아어도 참조>영어: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messages/migration/documents/20230511-world-migrants-day-2023.html이탈리아어: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messages/migration/documents/20230511-world-migrants-day-2023.html[내용출처 - https://cbck.or.kr/Notice/20230337?page=2&gb=K1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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